두껍진

단어 하나로 미국 남친과 헤어질 뻔하다

굴욕 일기
에디터 : 영고선생(@enggo)

굴욕자: 워싱턴 주 시애틀 변*리님

저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두껍진 독자입니다. 미국에 온 지 어느 덧 1년이 되어 가는데요. 이제는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의사소통엔 큰 무리가 없다고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살고 있었습니다. 아참, 저에게는 사귄지 100일이 갓 넘은 미국인 남친이 있는데요, 얼마 전에 겪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드릴게요.

사랑엔 국경도, 언어도 없다는 말이 사실인 듯, 아직도 짧은 영어이지만 남친과는 처음 만날 때부터 여느 미국 사람들보다 의사소통이 잘 되었습니다. 그리고 남친/여친이 된 후로는 친해져서 그런지 제 의사를 전달하는 일이 더욱 쉬워졌고요. 이에 따라 영어에 대한 제 (근거 없는) 자신감도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어요. 남친이야, 고마워! 흐어엉~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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막 피어난 연인들이 그렇듯, 저희도 새로운 곳을 찾아 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. 그러던 어느 날, 첩첩산중으로 하이킹을 갔는데 짚라인(zip-line)이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닙니까! 원래 스릴 있고 무서운 걸 좋아하는 저인지라 꼭 타보고 싶었죠. 그래서 남친에게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. 그랬더니 남친이 자기는 별로라는 겁니다. 그래서 진짜 재밌을 것 같다며 같이 하자고 졸랐죠. 그랬더니 남친이 우물쭈물 대다가 이렇게 말했어요.

남친: It looks kinda scary. By the way, I’m afraid of heights.
       좀 무서워 보이는데? 근데, 나 고소공포증 있어.
  

고소공포증? 장대만한 키에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이게 무섭다니?!! ㅋㅋ 좀 귀엽기도 해서 저는 이렇게 대꾸했죠.

나: You’re a coward!
(나의 의도: 자기는 겁쟁이야~)
  

 

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 (침묵) 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…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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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친의 얼굴엔 이전에 한번도 목격할 수 없었던 칠흑같은 어둠과 분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. 순하고 자상한 남친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. 이게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… 열심히 이해해보려는 순간, 남친은 이내 숨을 고르더니 씩씩거리며 짚라인 매표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. 무서운 말투로 다음과 같이 내뱉으면서요. 

남친: A coward? How dare you say that?
        겁쟁이라고? 넌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하냐?
  

짚라인을 타는 내내 남친은 도살장에서 살육당하는 가축인 양 미친듯 비명을 질러댔습니다. ‘저렇게 무서운데 굳이 왜 탄 거지?’라는 의문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. 

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남친은 저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. 저희 커플의 첫 다툼은 이유도 모른 채 이렇게 시작되고 끝이 났습니다. 

 

Ω 빠다형 클리닉

굴욕자님은 남친님의 남성성에 직격탄을 날린 일생일대의 크나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. ‘자기는 겁쟁이야~’ 발언으로 친근감과 애정을 표현하고자 한 굴욕자님의 의도는 나쁘지 않으나, coward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망언을 하시게 된 것이죠.

먼저, coward를 ‘겁쟁이’와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으로 사료됩니다. 하지만 coward는 ‘겁쟁이’보다 그 모욕적 수위가 훨씬 높습니다. 물론 한국어의 ‘겁쟁이’도 부정적인 단어는 맞으나 그 자체로 coward보다는 부정적 의미가 약하며, 심지어는 맥락에 따라서 귀엽게도 쓸 수 있기 때문이죠.

coward는 특히 남자에게 더욱 모욕적으로 느껴집니다. 여자에게 ‘너는 뚱뚱하고 못생겼어’라고 하는 것처럼 매우 모욕적으로, 남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. 이 말을 들은 남자 10명 중 10명이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을 거에요.

굴욕자의 남친님이 화를 낸 뒤,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짚라인을 탄 데에도 이유가 있는 거죠. 남성성을 공격당했으므로, 나는 용감한 남자라는 걸 여친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악밥감과 부담감이 가슴을 꽉 메웠기 때문입니다. 이렇듯 누구를 coward라고 부르는 데에는 보통 위험하고 무모한 짓을 부추기는 뉘앙스가 담겨 있죠. 

남친: It looks kinda scary. By the way, I’m afraid of heights.
          좀 무서워 보이는데? 근데, 나 고소공포증 있어.

여친: Then don’t worry about.
          아, 그럼 됐어. (= 하지 말자.)

남친의 말에 이처럼 응대했다면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겁니다. 자, 그러니 정말 coward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(예: 자기만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비열한 짓을 했을 때)이 아니면 남자에게 coward라고 하지 마세요!

* 굴욕 일기는 실존 인물들의 실제 굴욕 스토리를 영어 학습에 맞게 약간 각색한 것입니다.

 

2016년 6월 4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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